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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산김씨(光山金氏) 5대파조(大派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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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김씨(光山金氏)는 분파도에서 크게 5대파(大派)로 나누는데, 5대파는 문정공파, 문숙공파, 양간공파, 랑장공파, 사온직장공파이다. | |
우리 광산김씨(光山金氏)는 이른바 3대파라 하여 '문정공파, 문숙공파, 양간공파' 등으로 나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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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1957년 한성대보(漢城大譜)를 간행할 때 랑장동정 휘 규(珪)를 파조(派祖)로 하여 파보(派譜)를 따로 간행하던 일파(一派)가 새로이 대동보에 들게 되었으며, 당시의 문의(門議)로 上系統一會議(상계통일회의)에서 13세(世) 휘 대린(大鱗)의 장자(長子)로 삽입토록 결의하여 이 때부터 우리 광산김은 4대파로 되었다.
1984년 양간공파보(良簡公派譜) 역시 같은 모습으로 간행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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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다 1991년 광산김씨사(光山金氏史)를 발간(發刊)시 다시 13세(世) 휘 대린(大鱗)의 장자 곧 양간공이 형으로 오르게 되어 현재에 이르도록 두고두고 논쟁의 불씨가 되었다. 이는 필시 언젠가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사안(事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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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985년까지도 대동보에 들지 아니한 또 한 파의 일가들이 있었는데, 그 일가들은 시조공 후 17세(世)라 하고 관직이 사온직장이었다는 휘 영(英)의 후손으로 충북 지역에서 따로 파보를 간행해 오던 일파였다.
이 일파를 1985년 음 10월 1일에 대종중의 결의에 따라 광산김씨의 대파를 5대파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珥:黃臺典誥)는 대린의 3자로 들어왔으나 후계가 미상하다. 그리고 1985년 음 10월 1일 대종중 결의에 따라 취사당에 있는 광산김씨 대종회를 광산김씨 대종중이라 하고 서울에 있는 광산김씨 대종회 총본부를 광산김씨 대종회로 개칭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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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세 김태현(金台鉉)(문정공 파조:文正公派祖)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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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金台鉉)(문정공 파조:文正公派祖) (1261∼1330) 70歲 고려 후기 문신. 자는 불기(不器), 호는 쾌헌(快軒), 또는 설암(雪菴), 아버지는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참지정사(參知政事) 집현전태학사(集賢殿太學士) 판예부사(判禮部事) 수(須)이며, 어머니는 옥구군대부인(沃溝郡大夫人) 고씨(高氏)로 예빈경(禮賓卿) 정(?)의 딸이다. 용모가 위장수려(偉壯秀麗)하고 담력과 지략이 출중하였다.나이 15세에 사마시에 장원으로 합격하였고 16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부(詞賦)의 걸출(傑出)한 문장을 숙부 문숙공(文肅公) 주정(周鼎)이 보고 우리 가문을 크게 빛낼 사람이라 칭찬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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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우위참군(左右衛參軍) 직문한서(直文翰署)에 제수 되었으며 이 때부터 7년 동안에 세 번 승진하여 관계(官階)가 7품에 이르기까지 다 학문과 문필에 관한 일을 관장하는 직책에 등용되었다. 1288년(충렬왕 15)에 당후관(堂後官)을 거쳐 권지(權智)가 되고 또 상의관제(商議官制)가 폐지되었으므로 따라서 퇴관하여 이로부터 10년간 집에서 유유자적(悠悠自適) 심신을 정양하고 1321년(충숙왕 9)에 첨의평리(僉議評理)에 기용되고 이어서 판삼사사(判三司使)가 되었으며 그 후 요직을 두루 거쳐 1327년(충숙왕 15)에 삼중대광(三重大匡) 문하시중 수문관 대제학전리사사(大提學兼典理司事)로 치사(致仕)하였고 시호는 문정공(文正公)이다. 아들 광철, 광재와 삼부자가 명신으로 문장과 덕이 뛰어나 모두 文字 시호를 받았다. 묘(墓)는 개풍군 중면 대룡리 대야치 덕운산(開豊郡 中面 大龍里 大也峙 德雲山)에 있다. 국토가 분단되어 향화(香火)를 받들 수 없음을 후손들이 한하여 광산군 비아면에 설단하여 매년 3월 3일에 제향을 받들고 있다. 저서로는 《동국문감》이 있다. (見高麗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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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配는 화평김씨(化平金氏) 父 좌우위낭장(左右衛郎將) 의(儀) 生一子, 配 개풍군대부인(開豊郡大夫人) 왕씨(王氏) 父 신호위낭장(神虎衛郎將) 증추밀원사(贈樞密院事) 정단(丁旦), 祖 예빈경 (禮賓卿) 근(覲), 外祖 좌사간(左司諫) 이서춘(李瑞椿) 元宗丙寅生 恭愍王丙申三月十八日戊戌卒 壽九十一歲○墓 (牧隱李穡撰誌) 有短碣左刻金侍中右刻大夫人王氏墓 (見豊德陵墓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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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세 김주정(金周鼎) (문숙공 파조:文肅公派祖)]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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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8∼1290) 63歲 고려 후기의 문신, 자는 지숙(之叔), 아버지는 증문하평장사(贈門下平章事) 경량(鏡亮)이다.
1264년(원종6) 문과에 급제하였고 해양부록사(海陽府錄事)를 거쳐 이부시랑(吏部侍郞)을 지내고 1274년(충렬왕1) 좌사의대부(大府卿 左司議大夫)로 승진되었으며1278년(충렬5) 행종도감사(行從都監使)가 되어 왕을 호종(扈從) 원나라에 들어가서 각군(各軍)의 공물(供物) 받는 일을 없애고 김방경(金方慶)이 큰 공이 있음에도 억울하게 유배(流配)된 것을 상소하여 석방케하는 등 많은 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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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후 좌부승지(左副承旨)에 오르고 1281년(충렬8) 원나라 세조(世祖)가 제2차 일본정벌을 계획하자 소용대장군우부도통(昭勇大將軍右副都統)에 특진되었으며 이어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가 되었다. 그 후 광정대부도첨의사사보문각태학사동수국사판삼사(匡靖大夫都僉議使司寶文閣太學士同修國史判三司使)에 이르렀고 시호는 문숙공 (文肅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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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는 실전되어 수호하지 못하다가 후손 천상(天相)이 1749년(영조26)에 개성부 동문외 중서면 연하동 덕달곡에서 찾아 수호하게 되었으나 국토 분단으로 봉심(奉審)할 수 없어 설단 하였다. 配는 상질현대부인(尙質縣大夫人) 흥성장씨(興城張氏) 父 증,군부판서(贈軍簿判書) 득구(得球) 生一男二女, 配는 김씨(金氏) 父 찬성사(贊成事) 연(璉) 生一男, 配는 이씨(李氏) 父 판각문사(判閣門事) 신손(信孫)이다.
(參考文獻 ; 高麗史)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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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세 김연(金璉) (양간공 파조:良簡公派祖)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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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金璉) (양간공 파조:良簡公派祖) (1215년∼1291) 78歲 고려 충렬왕때의 문신. 初名은 중룡(仲龍), 자는 기지(器之), 아버지는 증문하시랑(贈門下侍郞) 평장사(平章事) 대린(大鱗)이며 어머니는 익양군부인 광주김씨(光州金氏)로 호장보윤(戶長甫尹) 준령(俊齡)의 딸이다. 公은 천품이 준수 비범하였고 눈썹이 그림같이 아름답고 맑았으며 어릴 때부터 내시(內侍)가 되어 임금을 가까이 모셨다.
김연(金璉) (양간공 파조:良簡公派祖) (1215년∼1291) 78歲 고려 충렬왕때의 문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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初名은 중룡(仲龍), 자는 기지(器之), 아버지는 증문하시랑(贈門下侍郞) 평장사(平章事) 대린(大鱗)이며 어머니는 익양군부인 광주김씨(光州金氏)로 호장보윤(戶長甫尹) 준령(俊齡)의 딸이다.
김연(金璉) (양간공 파조:良簡公派祖) (1215년∼1291) 78歲 고려 충렬왕때의 문신. 初名은 중룡(仲龍), 자는 기지(器之), 아버지는 증문하시랑(贈門下侍郞) 평장사(平章事) 대린(大鱗)이며 어머니는 익양군부인 광주김씨(光州金氏)로 호장보윤(戶長甫尹) 준령(俊齡)의 딸이다. 公은 천품이 준수 비범하였고 눈썹이 그림같이 아름답고 맑았으며 어릴 때부터 내시(內侍)가 되어 임금을 가까이 모셨다.
1255년(고종 43) 시어사(侍御史)가 되어 선정(善政)하였고 네 고을에 치적(治積)을 남겼으며 병부시랑(兵部侍郞)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를 거쳐 형부상서(刑部尙書)에 이르렀다.
1275년(충렬왕 2) 경상도 도지휘사(都指揮使)가 되어 동정(同征: 원나라와 연합하여 일본을 정벌하는 일)할 전함(戰艦) 900척을 만들 때 총책임자가 되었다. 이 때 어느 날 밤에 홀연히 꿈에 허리에 찬 금어(金魚: 벼슬아치가 차고 다니던 황금으로 물고기 모양처럼 만든 주머니)가 땅에 떨어지니 스스로 해몽(解夢)하기를 "몸의 장식이 이미 갔으니 이제 오래 머물 수 없다"하고 사퇴하니 지도첨의(知都僉議)로 승진시키고 이어 광정대부 첨의시랑 찬성사(匡靖大夫 僉議侍郞 贊成事)로 치사(致仕)했다. 화상(畵像)이 있었으나 1592년(선조 26) 임진왜란 때 소실(燒失)되고 화상찬(畵像贊)만 남아있다. 1261년(원종 3)에 발행된 호적(戶籍)이 후손(後孫) 부필(富弼)의 종가(宗家)에 보존되어 있으니 우리나라에 현존(現存)하는 가장 오래된 호적이다. 시호는 양간공(良簡公)이다. 1781년(정조 6) 고창군 고수면 전불 노산사(蘆山祠)에 배향되었다. 묘(墓)는 실전되어 1986년 논산군 연산면 고정리에 설단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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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配는 연주군부인(連珠郡夫人) 능성조씨(綾城曺氏) 父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예부상서(禮部尙書) 저(著), 祖 검교신호위장군복정(檢校神虎衛將軍僕正) 추재(樞材), 曾祖 호장보윤(戶長甫尹) 자렴(子廉), 外祖 좌우위보승중랑장(左右衛保勝中郞將) 정주(貞州) 정장(鄭莊)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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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세 김규(金珪) (낭장공 파조:郎將公派祖)]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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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金珪) (낭장공 파조:郎將公派祖) 구휘(舊諱) 찬(贊) 고려 충렬왕때 무신. 아버지는 평장사(平章事) 대린(大鱗)이며, 어머니는 익양군부인(翼陽郡夫人) 광주김씨(光州金氏)로 호장보윤(戶長甫尹) 준령(俊齡)이다. 여원연합군(麗元聯合軍)에 들어가 낭장동정(郎將同正)이 되어 전공을 많이 세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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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세 김영(金英)(사온직장공 파조:司온直長公派)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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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金英)(사온직장공 파조:司온直長公派) 고려 후기의 문신, 고려조 말기에 사온서직장(司온署直長)을 지내고 조선조에 공조참의(工曹參議)에 추증(追贈)되었다. 묘(墓)는 실전되어 중원군 금가면 잠병리에 설단(設壇)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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